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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
  • 평점    0점  

  •  
  •   2015-06-15

  스팸글    ------------------------------------------------------적립완료 ♥
  • 박명진
  • 평점    0점  

  •  
  •   2015-05-31

  스팸글    http://blog.naver.com/mjin777/220375998092
아버지 제가 아직도 변변한 직장을 못가지고 시간을 보내는것 같아 많이 속상하시죠 아버지를 실망시켜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저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믿고 기다려 주세요 제가 꼭 효도하겠습니다 아버지 건강하세요
  • 유미희
  • 평점    0점  

  •  
  •   2015-05-31

  스팸글    https://www.facebook.com/dryworse/posts/825870587491041

사랑하는 아버지께 고백을 해보고자 합니다.

아버지 그곳에선 평안하시죠?

아버지가 제가 2000년 대학생이 되었을때
술먹고 들어오시면서 제게 내밀었던 폰이 저의 첫 핸드폰인데
그게 2.14 발렌타인데이였던거 기억하세요?

그래서 019번호를 거의 8년간 유지했었어요^^

2G에서 3G로 바꾸어야 했을때 010 번호로 바꾸어야 해서
오래전부터 함께 했던 019와 헤어질때...
첫번째 핸드폰이면서 그 번호를 부여해준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라요.

제 명의로 핸드폰을 바꾸어서 집에 부담을 덜어드리려고
(그전까지는 핸드폰 명의는 아버지 이름이었거든요...)
고향에 내려가서 아버지와 함께 집앞 대리점을 간 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본 때였답니다.

매일 전화했지만 어버이날 전화했을때
아버지가 전화를 힘없이 받았을때, 내려갈걸....
물어볼걸 그랬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요?
언제나 핸드폰을 사용하는데...
핸드폰으로 안부전화드리면서 무뚝뚝하게만 굴었던 제가 후회되서
많이 울었던 추억도 같이 떠오릅니다.

아버지 제가 많이 사랑해요.
아시죠?
그리고 죄송해요.
조금더 사랑한다고 말할걸...
아버지 힘드신거 저도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네요.
제가 나이 들어서 일하니까 아버지의 힘들었던 시간들을 이해하게 되었어요.아시죠?
  • 임지훈
  • 평점    0점  

  •  
  •   2015-05-31

  스팸글    https://www.facebook.com/HagoPagodastar/posts/482443995244096

아부지 하면 참 할말이 끝도없이 많지요.
경상도 특히 부산사람들이라면 뭐 다 공감하실테지만,
아부지는 참 무뚝뚝하십니다. 그로인해서 저도 무뚝뚝하지요.
어릴때는 아부지 프라이드 자동차 타고 아부지가 좋아하시던 김현철 아저씨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들으면서 같이 드라이브 하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같이 산에 올라가서 라면도 먹고, 등산객 아저씨들한테 닭백숙도 얻어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남같은 부자관계지만 말이죠.
아버지 위로는 형이 두분이신데, 두분다 잘사십니다. 엄청나게 잘사십니다.
근데 아부지는 천성이 착한건지 모르겠지만 매번 흥부처럼 두분한테 이용만 당하시고, 결국 돈은 많이 벌지도 못하셨죠.
초등학교때는 대구에 살다가 부산으로 오면서 아버지는 일하시느라고, 대구에 계시고,
어무이, 누나, 저 셋만 내려와서 살았었지요. 일주일에 한번씩 아부지가 대구에서 오실때마다 사오시던 치킨의 맛은 지금의 어느 치킨 체인점의 맛보다 최고였습니다.
아무래도 가족 넷이서 함께 먹는거라서 그런거였겠지요?
주말에 혼자서 밖에 나가보면, 가족끼리 자가용타고 놀러다니는 애들보면 정말 부러웠었죠.
아부지랑도 떨어져서 살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또 어머니랑도 한번 떨어져서 살아봤지요.
사춘기라고 해봤자 누구한테 터놓을 곳도 혼자 묵묵히 지냈습니다.
청소년기때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아예 없습니다.
아버지가 폭력적인 분은 아니시지만, 무뚝뚝해서 어머님한테 애정표현하는걸 태어나서
한번도 못봤습니다.
요즘은 아버지보고 항상 어머님 잘 챙겨드리시라고 제가 얘기를 하죠. "자식보단 와이프가 먼접니다"라고 말이죠.
아버님도 나름대로 고민이 많으실텐데, 고민이나 힘든걸 절대 말씀안하시고, 혼자서 담는 스타일이라서 좀 답답하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디스크도 오랫동안 있으셔서, 여행도 잘 못가셨었는데, 요즘은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아직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비행기 한번 못타보셨는데, 아버지랑 어머님 두분이서 오붓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 최윤정
  • 평점    0점  

  •  
  •   2015-05-31

  스팸글    드르륵..드르륵...저희집 어릴때 풍경은 늘 아빠와 엄마의 미싱 소리와 다리미에서 나오는 칙칙 거리는 증기 소리로 가득했어요..
어린시절, 미술을 너무나 하고 싶던 친정아빠... 하지만 14형제중 막내로..
집안 형편이 좋을리 없었던 터라..일찍이 포기를 하고 양장기술을 배워..
양장점을 내셨다가 제가 태어날즈음..세탁소를 차리셨어요

34년간 한 자리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계신 부모님..
IMF때.. "다녀왔습니다! " 하고 인사를 나누고 가게로 들어서는데..
아빠 나이보다 한참 어린 손님이 아빠에게 삿대질을 하고..
얼굴에 옷을 집어던지며.." 새옷인데 어쩔꺼에요?" 하면서 따지더라구요..
분명 손님이 수선해달라는 만큼 해줬는데..여기서 갈아입고 길이도 재지 않았냐고 하는데도 손님은 다짜고짜 백화점 상품인데 새로 사내라고 하는데 화를 같이 낼 것 같은 아빠는 오히려 "네.." 하며 오히려 어린 딸이
놀라지 않았을까..너는 방에 들어가 있으라며 저를 들여보내셨어요..

얇고 작은 나무 문 사이로 아빠의 뒷모습을 보는데 ..
IMF때라 가뜩이나 어려웠던 살림에 너무나 작아진 아빠 모습을 보며..
너무 찡하고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는 제 자신이 너무 미웠어요.
어느새 장성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지금..
그때.. 왜 우리 아빠에게 그러냐며 화라도 내볼걸..
아빠는 농담처럼 지금도 그때 그 손님이랑 같은 색깔 바지만 봐도 싫다며
웃어 넘기곤 하시는데 가끔 그때의 아빠 모습이 생각나서 마음이 울컥 할때가 있답니다..

작은 바늘구멍에 실을 한번에 꽤는 아빠를 보며 저와 동생 셋이 박수를 치며 마치 마술사를 보듯 신기해했었는데 이제 그런 아빠는..돋보기를 끼고..연신 실에 침을 바르며..아빠도 나이를 먹긴 먹었다 하며 손까지 떠시고..엄마도 가게일에 부업일에 늘 손에서 일을 놓치 않으셔서 저녁이면 저희들 자는거 같을때 몰래 눈물을 훔치셨다는것도 알고 있어요..

등산을 참 좋아하시는 부모님..이젠 일도 조금은 내려 놓으시고..
두분만을 위한 시간 많이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 허재용
  • 평점    0점  

  •  
  •   2015-05-31

  스팸글    http://cafe.naver.com/ralralrapda/14175

사랑하는 울 아빠~
아...
아빠만 썼는데도 눈물나려하네..^^;
항상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하고싶었는데
한번도 제대로 말해준적없이 화만내고 짜증만 부려서 너무 미안해...
아빠 나 어릴적에 기억나?
내가 동네 아이들이랑 골목 골목를 휘젖고 다니면서 사고치멱 엄마는 항상 베란다에서 손들고 벌 세우고 있으면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는 '우리 재용이가 튼튼해서 그런거야! 약하면 사고치고 싶어도 못쳐~'라면서 항상 내 편를 들어주곤 했잖아 ^^
아빠 친구 자식들이 공부 잘한다는 말를 들으면 우리 재용이는 골목대장이라며 자랑했던 울 아빠!
나 솔직히 그때 아빠한테 너무 고마웠어 *^^*
아빠가 뽀뽀 한번만 하자며 다가올 때 엄마랑은 잘도 하면서 아빠한테는 싫다고 짜증내고 화내서 미안해...
공부도 못하면서 시험기간만 되면 무슨 전교1등인냥 짜증내고 화내서 미안해...
아빠한테 철없는 아들이고 밖에서 자랑할거 하나도없는 못난아들이지만 언제나 ' 우리 재용이가 최고야! '라고 말해줘서 고마워~
요즘 엄마가 많이 힘들어서 자주 다투고, 아빠 일도 잘 안되서 힘든데 나까지 짐이되서 너무 미안해...
항상 너무나 착해서 손해보고 사는 아빠보고 바보같다고 놀리지만 그래도 그런 아빠가 울 아빠라서 나는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
아빠...
이기적이고 무뚝뚝한 아들이라 표현도 잘 못해서 미안하고 진짜 진짜 말로 다할수없을만큼,
그만큼 사랑해!
  • 오미상
  • 평점    0점  

  •  
  •   2015-05-31

  스팸글    http://blog.naver.com/ohmisang
  • 오미상
  • 평점    0점  

  •  
  •   2015-05-31

  스팸글    이글은 아들이 뇌수막종으로 투병하는 아빠에 대해서 쓴 글입니다. 학교 공개수업때 썼던 글인데 그때 참 많이 울었습니다.
아들의 소망대로 아빠는 투 병중이기는 해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답니다. 아빠와 아들들이 웃는 모습 한번 꼭 볼 수 있게 해주세요. 기적을 바라며 이 글을 올립니다.

아빠 힘내세요.

2007년 7월 어느 날 학교를 가려는데 아빠가 양치질을 하시다가 갑자기 쓰러 지셨다.
나는 너무 놀랐다. 엄마가 119에 전화하라고 소리를 지르셔서 119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아빠는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셨다.
나와 동생은 또 한번 진정 되지 않은 가슴을 놀라야 했다.
아빠의 머리에 종양이 있어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빠는 수원 아주대 병원으로 다시 옮겨 가셨다. 아빠의 병원생활동안 나와 동생 영진이는 많이 슬퍼했다. 그러자 큰외삼촌이 나에게 아빠가 수술 받고 나아서 다시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하셔서 조금 희망을 가졌다.
엄마는 수원 아주대 병원에서 아버지 병간호를 하고 계셨고, 할머니와 베이비시터 선생님이 와서 나와 영진이를 대신 돌봐 주었다.
그때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아빠가 빨리 완쾌 하셔서 다시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기를 내가 믿는 하나님께 매일 기도 했다.
아빠가 수술 하셨을 때 보지는 못했지만 엄마의 말씀으로는 아빠의 머리가 아주 크게 부었다고 한다. 아빠가 수술하는 내내 나와 동생은 너무나 불안하고 슬펐다.
얼마 전만 해도 활기차고 토요일, 일요일 에는 다른 아버지들처럼 누워서 잠도 주무시고 텔레비전도 보시던 아빠. 그렇게 별다를 것 없던 소중한 아빠가 어쩌면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펐다.
수술이 끝나고 세달 만에 병원생활이 끝나고 아빠가 집에 돌아 오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몸도 제대로 가누시지 못하셨다. 그리고 웃지도 않으셨다.
아빠가 걸어 다니시지도 못하고, 쓸어져 경련을 하시는 것을 볼 때마다 정말 힘들었다.
가끔은 아빠가 돌아가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빠가 일어나실 수 있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우릴 보고 힘내서 하루빨리 일어나시면 좋겠다고 생각 했지만 아빠는 우울증이 심해 지셨다.
아빠가 우울증에 걸리시면서 아빠는 웃지도 않으셨다. 엄마 말씀으로는 우리가 학교에 간 사이 아빠가 자살을 시도 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많이 우셨는데 너무 불쌍했다.
그래서 아빠는 또 재활병원에 입원하셨다. 아빠가 투병하실 때 우리는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었다.
하루라도 우리가 병문안을 안가면 아빠의 우울증이 더 심해질 것 같아서 나와 동생은 학교가 끝나면 아빠가 계시는 재활병원으로 갔었다.
비가 올 때도 있었고, 눈이 올 때도 있었다. 아빠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가 예전처럼 힘차게 웃으시는 모습을 꼭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봄이 오자 아빠는 우울증에서 벗어나신 것 같았다. 지금도 아빠가 처음으로 웃으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 진다.
아빠는 우리들을 위해 열심히 재활훈련을 하셨다. 그리고 드디어
1년이 다되어 가는 때에 아버지가 퇴원 하셨다.
그리고 아빠가 다시 출근을 하셨다. 그날 나는 너무 기뻐서 날아 갈 것 같았다.
아빠랑 일상생활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 하다.
나는 아프신 몸으로 열심히 일하시고 우리를 위해 온힘을 다하여 살아가시는 아빠께 감사한다. 아빠는 남은 종양을 마저 제거하는 수술도 무사히 받으셨다.
엄마가 제주도 가족 여행을 간다고 하셨다. 엄마에 말씀은 아빠가 제주도 가족여행이 소원이셨다고 한다. 드디어 제주도 가는 날이 왔다. 공항은 집에서도 한시간반이나 걸렸다. 그리고 비행기 시간까지 기다리는데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비행기는 처음 타보는 것이어서 너무너무 설레었다.
드디어 비행기가 날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우주의 무중력 상태인 것처럼 느껴지고, 어떨 때는 바이킹을 탈 때처럼 오묘한 느낌 이었다.
아빠는 안색이 안 좋아 보이셨고, 엄마는 많이 겁이 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고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 하였다. 도착하자 공항에 기사 아저씨와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왕자님이 된 느낌이 들었다.
숙소로 바로 가서 짐을 내려놓는 줄 알았는데 구경을 하고 밤에 간다고 아저씨가 말씀 하셨다. 엄마가 바닷가에 가자고 하셔서 해수욕장에 내렸는데 동생과 나는 바다에 대고 큰소리를 지르고 뛰어 다니며놀았다. 아빠도 늦게 바닷가로 오셨는데 웃고 계셨다.
해가지자 팬트하우스라는 곳으로 왔다.
너무 예쁜 집이었다. 인터넷도 있었고 영화도 볼 수 있었다. 저녁은 엄마가 장을 봐서 해 주셨는데 정말 맛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너무 아쉬웠다.“엄마 다음에 또와요.” 했다. 엄마는 고개만 끄덕이셨다. 제주도여행을 간 것도 좋았지만 아빠가 바닷가에서 밝게 웃으셔서 너무나 좋았다. 지금도 아빠의 웃으시는 모습을 생각하면 울컥 눈물이 난다.
가끔 제주도 여행을 생각하면 웃음이 지어진다. 그러면 “엄마 제주도 여행 너무 좋았지”
엄마는“그래” 하신다. 또 가고 싶다. 엄마랑 아빠랑 동생이랑..
아빠는 지난여름 더위 속에서도 열심히 근무하셨다. 아빠가 살아 계시다는 것이 꿈만 같다.
나도 아빠가 기뻐하실 만한 일을 해드려야겠다.
내가 지금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아주 극히 일부분 밖에 안 되지만 그것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그래도 아버지의 큰 은혜는 다 갚지 못할 것 같다.
이제 중학생이니까 더 열심히 공부해서 아빠 많이많이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

  • ntjiho
  • 평점    0점  

  •  
  •   2015-05-31

  스팸글    http://ntjiho.blog.me/220375655872
부모님 사랑합니다.
  • 정하은
  • 평점    0점  

  •  
  •   2015-05-31

  스팸글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767533686694597&set=a.763610407086925.1073741826.100003139177968&type=1&theater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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